MAGAZINE / TREND
2019. 12
은퇴 후 삶을 확장하고 싶다면
자기 역사를 써라
한 해를 마무리하며, 기록에 관한 에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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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과거를 바꿀 수는 없지만, 과거에 대한 해석을 바꿀 순 있다.
자기 역사를 써보는 것은 현재와 미래의 삶을 확장하는 데도 도움이 된다.
자기 역사 쓰기에 관한 이야기를 펼쳐본다.
자서전을 통해 되돌아본 인생
“자서전을 쓰면 뭐가 좋은가요?”라는 질문을 받을 때마다 나는 몇 년 전에 만난 A 씨의 이야기를 예로 든다. 그는 ‘겉은 멀쩡했지만 속은 타들어가던’ 자신의 인생을 돌아보고, 자신이 불행하던 원인이 무엇인지 정리해보고 싶어서 자서전을 쓰기로 결심했다고 했다. 자서전은 오랫동안 잊고 있던, 아니 의식적으로 생각하지 않으려고 애쓰던 ‘어린 시절과 가족’ 이야기를 쓰는 것으로 시작했다. 그는 부부 싸움이 끊이지 않은 부모 밑에서 자랐다.

“어린 시절에는 부모가 저렇게 싸우다가 이혼이라도 하면 어떻게 하나 하는 불안감 속에서 살았어요.”

장남이던 그는 스트레스를 심하게 받았고, 불행한 청년기를 보냈다. 남들로부터는 성실하고 얌전한 사람이라는 평을 들었지만, 그의 마음속에는 대인관계에 어려움을 겪는 상처받은 어린 소년이 들어 있었다. 자주 불행했고, 자주 부모를 원망했다.

게다가 자신의 결혼 생활 또한 행복하지 않았다. 그런데 자서전을 쓰기 위해 가계도를 그려보고, 아직 살아 계신 어머니, 그리고 돌아가신 아버지의 친척들을 만나서 부모의 과거를 추적해보는 과정에서 그는 기대하던 것보다 훨씬 큰 깨달음과 치유의 과정을 겪었다.

그의 어린 시절, 즉 부모의 싸움이 계속되던 그 시절이 부모 각자의 인생에서도 가장 힘든 시기였다는 것을 새삼 깨닫게 된 것이다. 가난한 집안의 장남이었던 아버지는 전쟁으로 풍비박산 난 집안의 대식구를 부양하기 위해 자신의 꿈을 희생해야 했고, 당시 만나고 있던 여자A 씨의 어머니가 임신하는 바람에 결혼할 수밖에 없게 된 처지에 대해 분노하고 있었으며, 어머니 또한 졸지에 가장 노릇을 하게 된 불행한 차녀였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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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서전 쓰기는 과거의 상처와 대면하고 이해함으로써 인생을 긍정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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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서전은 미래를 설계하는 계기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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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전 처음으로 부모가 나한테 화를 낸 게 아니라 각자 스스로의 운명에 대해 화를 내던 거라는 사실을 깨달았어요. 등록금 납부일을 하루라도 넘기지 않으려고 전전긍긍하던 아버지의 모습이 떠올라서 울기도 많이 울었어요.”

A 씨는 평생 처음으로 부모의 긍정적인 모습을 본 것 같았다. 내면의 분노가 사라지는 느낌도 들었다. ‘내가, 이래 봬도 소중한 존재구나’라는 자기 인식도 갖게 됐다. 아내와 관계에 대해서도 전과는 다른 통찰력을 갖게 됐다고 말했다.

“이제야 아내한테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 알게 됐어요. 부모처럼 싸우는 게 좋다는 뜻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지나치게 참는 게 능사가 아니라는 것도 깨달았죠.”

나는 A 씨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인생은 해석’이라는 점을 실감했다. 우리 인간이 과거를 바꿀 수는 없지만 과거에 대한 해석은 바꿀 수 있는 것이다. 자서전은 과거의 인생을 지우고 다시 쓸 수 있는 강력한 도구이며, 과거의 불만과 부정적인 감정을 해소해주는 통로가 될 수 있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그래서 나도 언젠가 나의 과거 이야기를 써봐야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지금은 아니다, 지금은 과거를 돌아보거나 자서전 같은 글을 쓰기에는 너무 바쁘고, 나중에, 은퇴한 후에, 한가해지면, 최소한 일흔이 넘은 후에 써야겠다고 막연히 생각했다. 그런데 작년 가을 갑자기 ‘나의 역사’를 쓰게 되고 올해 초부터는 ‘자기 역사 쓰기 교실’까지 진행하면서 내가 직접 깨달은 사실이 있다. 자기 역사를 쓴다는 건 단순히 과거 이야기를 쓰는 것, 그 이상이라는 점이다. 자기 역사를 써보는 것은 현재의 삶과 미래의 삶을 확장하는 데도 도움이 된다.
나를 위해 쓰는 나의 기록
나는 은퇴를 1년 앞둔 지난해 여름 후배 L로부터 다치바나 다카시가 쓴 <자기 역사를 쓴다는 것>이라는 책을 받았다. 이 책은 릿쿄立敎대학에서 2008년부터 운영하고 있는 ‘릿쿄 세컨드 스테이지 대학50세 이상을 위한 1년제 대학과정’에서 개설한 ‘현대사 속의 자기 역사’라는 강좌의 내용과 운영 과정, 수강생들이 직접 쓴 ‘자기 역사’의 실제 사례를 엮은 책이다.

이 책에서는 자서전보다는 ‘자기 역사’라는 단어를 씀으로써 자신이 살아온 시대 역사의 흐름 속에 자신의 삶을 투영해보는 관점을 좀 더 강조하고 있었다. 즉 결과적으로 자기 역사와 함께 동시대 역사를 쓰게 되는 것이라고나 할까. 수강생들이 직접 쓴 ‘자기 역사’의 실제 사례는 흥미로운 정도를 넘어서 감동적이기까지 했다.

아무튼 나는 “저도 그 책에 나오는 것처럼 자기 역사를 써보고 싶어요. 제 글도 손봐줄 겸 이참에 선배님도 같이 쓰시죠”라는 후배의 제안으로 갑자기 ‘나의 역사’를 쓰기 시작했고, 그 결과가 기대 이상으로 좋아서 올해 초부터 50대 이상의 남녀를 대상으로 하는 ‘자기 역사 쓰기 교실’도 진행하고 있다. 결과는 기대 이상이다. 1960년 4월 19일 당시 종로에 있던 초등학교에 다니던 H 씨는 어린이의 눈으로 본 역사 현장, 그날의 이야기를 생생하게 재현했다. 불과 석 달 만에 600페이지에 달하는 ‘자기 역사’ 원고를 완성한 S 씨는 자신이 진작 이걸 썼다면 암에 걸리지 않았을 거라고 썼다. 전기도 들어오지 않은 시골 마을에서 태어나 IT 전문가가 된 N 씨는 수십 년간 잊고 지내던 과거를 복원하고, 은퇴 후를 생각해볼 수 있어서 의미 있고 행복했다고 썼다.

이 과정을 진행하면서 자기 역사 쓰기가 결국 자기 자신을 위한 것이라는 점도 실감했다. 과거의 자신과 온전히 마주하고 자신의 삶을 제대로 돌아봐야만 내가 ‘누구’인지 ‘어떤 사람’인지 확실히 알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야만 현재의 나 자신이 단단해질 수 있고, 이런 과정을 통해 나 자신의 삶을 확장할 수 있는 것이다.

자기 역사 쓰기는 미래를 설계하는 데도 도움이 된다. ‘은퇴 후의 삶을 확장할 것인가, 축소할 것인가? 번화한 곳에서 살 것인가, 조용한 곳에서 살 것인가? 화려한 인맥을 계속 유지할 것인가, 아니면 소수의 사람과 교류하면서 조용히 내 할 일을 계속할 것인가?’ 등등의 질문에 대한 ‘맞춤형’ 대답을 찾을 수 있다. 다치바나 다카시는 이렇게 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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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컨드 스테이지, 즉 두 번째 삶의 무대를 다시 디자인하는 데 무엇보다 필요한 것은
자신의 퍼스트 스테이지, 즉 첫 번째 삶의 무대를 면밀하게 다시 들여다보는 것이다.
이를 위한 가장 좋은 방법은 자기 역사를 써보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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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당신에게 묻고 싶다. 당신은 ‘변곡점’이 있던 과거에 대해 써보고 싶다는 생각을 해본 적이 있는가. 이를 통해 자신을 이해하거나 트라우마를 치유하고 싶은 마음이 있는가? 자녀를 포함한 누군가에게 ‘나는 이렇게 살아왔다’ 라는 기록을 남기고 싶지 않은가? 두 번째 인생을 디자인하고 은퇴 후의 삶을 확장하고 싶은가? 그렇다면 바로 지금부터 ‘자기 역사 쓰기’에 도전해보시라. 첫 번째 삶의 역사를 써본 사람의 두 번째 인생은 몇 배나 더 의미 있고 풍성하고 행복해질 것이라고 확신한다.
글. 한혜경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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