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GAZINE / LIFESTYLE
2019. 09
입고 싶은 것을
멋지게 입기
시니어의 패션 자신감, 그레이 크러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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멋을 아는 시니어에게 패션은 취향의 결집이자 여가를 즐기기 위한 필수 요소다.
패셔너블한 시니어는 ‘그레이 크러시’로 불리며 문화계의 이슈로 떠올랐고 SNS상에서도 화제가 되고 있다.
다양성을 존중하는 최근 패션 흐름 속에 세대를 초월한 ‘나다움’으로 정의되는 실버 패션을 주목해본다.
최근 패션의 가장 큰 흐름은 바로 다양성이다. 그동안 패션은 개성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입으로는 말하면서도 키 크고, 마르고, 젊고, 근육질에 머리 작고, 다리는 길어서 비율이 좋은 체형, 즉 대부분의 사람은 후천적으로 만들어낼 수조차 없는 모습을 이상적인 기준으로 움직여왔다.

그리고 이 같은 편견이 미디어를 통해 확대 재생산되면서 내면의 기준으로까지 자리 잡았다. 예컨대 살이 찌면 게으르다거나, 트렌드에 뒤지면 촌티 난다거나 하는 식으로 폄하하기도 했다. 사람들은 그런 자의적ㆍ타의적 압박 속에서 제 건강을 깎아가며 운동을 하고, 무리한 다이어트를 하면서 그게 현대인의 멋진 모습이라고 착각했다. 하지만 최근 들어 자신의 모습 자체를 긍정적으로 받아들이는 분위기가 본격적으로 형성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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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른 게 멋진 게 아니라 건강한 게 멋진 모습이고, 키가 크다고 멋진 게 아니라
자신감 넘치는 모습이 멋진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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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자기 몸 긍정주의는 패션의 기준을 바꿔놓고 있다. 그리고 이런 다양성은 인종ㆍ민족ㆍ성별 등 다방면에 걸쳐 있는데 최근 주목받고 있는 그레이 크러시, 즉 시니어의 패셔너블함 역시 그런 흐름 중 하나다.
패션은 곧
라이프스타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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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에서 패션 디렉터로 일한 닉 우스터는 멋진 패션을 선보이는 시니어다. 스트리트패션 사진으로 SNS 스타가 된 그레이 크러시의 대표적 인물이다.
그동안 패션이나 트렌드 같은 건 젊은 사람만의 전유물로 여겨왔다. 하지만 자신의 마음에 들든 말든 강요하는 취향의 획일화가 다양성의 물결 속에서 깨지기 시작했다. 그저 하라는 대로 가만히 있기엔 세상에 멋진 건 많고 시간은 너무 아깝다. 트렌드에 휘둘리던 어린 시절도 지나갔다. 이제 입고 싶은 걸 멋지게 입는 거다.

특히 시니어 패션은 새로운 시도를 두려워하지 않는 모습 자체가 그저 옷으로만 만들어내는 패션과는 다른 임팩트를 만든다. “패션이 라이프스타일”이라는 말은 바로 이런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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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그너처 스타일이란 그저 유행하는 옷이나 옷에 붙은 장식물이 아니다.
삶의 태도ㆍ방식과 단단하게 결합되어 있을수록 남들과 다른 유니크한 모습이 만들어지는데,
바로 이런 모습을 멋지다고 여기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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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예전에도 패션에 관심을 가지고 멋을 내는 중ㆍ노년층은 있었지만 그것이 미치는 영향력이 이전과 달라진 것이다. 바로 SNS 등 인터넷 소통 채널이 발달한 덕분이다. 사용하기 편리하고, 누구나 올릴 수 있으며, 광범위한 사람들이 본다. 패션은 디자이너가 제시하는 걸 넘어 이제 이렇게 우리 주변에서 만들어져 디자이너에게 영향을 주고 있다.
미국의 60세 패션 인플루언서
닉 우스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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닉 우스터는 크지 않은 키에 모델과는 거리가 먼 비율이지만, 클래식한 스타일에 트렌디한 아이템을 믹스 매치한 패션 사진으로 SNS에서 패셔니스타가 되었다.
닉 우스터는 1960년생으로 우리 나이로 올해 예순이 되었다. 원래 광고나 패션 저널리즘, 패션 유통 분야에서 오랫동안 일해왔지만 여러 가지 부침과 좌절을 겪었다고 한다. 그러다 50세 즈음 유명한 스트리트 사진작가 스콧 슈만이 찍은 사진 덕분에 일약 세계적 SNS 스타가 되었다.

사실 언제나 잘 차려입고 다닌 덕분에 컬렉션 기간 동안 스트리트 패션 사진가들에게 자주 사진이 찍혀오기도 했다. 특별한 계기가 필요했을 뿐이다. 지금은 인스타그램에서 70만 명이 넘는 팔로어가 있고, 패션 컨설턴트 및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등으로 활동하고 있다. 한국에도 몇 번 방문한 적이 있다.

닉 우스터는 흔히 패션 리더라고 생각하기엔 패션에서 단점이라 여기는 요소를 많이 가지고 있다. 예컨대 백발에 나이도 많은 편이고 키도 168cm로 별로 크지 않다. 머리 크기나 다리 길이, 몸집 등 비율도 그다지 좋다고 할 순 없다. 하지만 이런 것들을 가지고 자신만의 스타일을 만들어냈다.

기본적으로 클래식, 헤리티지풍의 엄격한 스타일의 옷에 반바지나 스니커즈, 백팩 등을 믹스 매치하는 모습을 매우 즐긴다. 즉 클래식한 아이템으로 본래의 나이가 발휘해 낼 기품은 살리고, 거기에 트렌디한 아이템을 섞고 믹스 매치함으로써 시선을 흐트리는 식이다. 믹스 매치가 만들어낼 수 있는 혼란스러움은 일관성 있는 컬러의 조합으로 해결한다.

사실 많은 관심과 경험, 연구 끝에 자신에게 매우 특화된 스타일을 확립한 결과이며, 계속 발전해나아가고 있기 때문에 아무나 보고 쉽게 따라 할 타입은 아니다. 하지만 그의 패션에 대한 태도, 열정은 분명 큰 영감을 준다.

특히 패션과 자기 자신을 위해 술과 담배도 금하고, 채식과 생선 위주로 식사하며, 매일 운동하고 성취감을 기르며, 언제나 에너제틱한 상태를 유지하려 애쓴다고 한다. 즉 생활을 절제하며 자신감을 만들고 그걸 패션으로 표출하고 있다. 이런 삶에 대한 엄격한 태도가 많은 사람에게 좋은 영향을 주고 있기에 인기를 유지해나가고 있는 게 아닐까 싶다.
젊은 감각으로 인기를 끄는
테일러메이드 여용기 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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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용기 씨는 테일러 숍 ‘에르디토’의 마스터 테일러다. 멋지게 차려입은 패션 사진을 인스타그램에 업로드하고,
먹방 유튜브를 운영하며 많은 팔로어를 거느린 SNS 스타다.
여용기 씨는 1953년생의 테일러, 즉 옷 만드는 사람이다. 부산의 닉 우스터라고도 불리면서 시니어 패션을 선도해나가고 있지만, 보다시피 닉 우스터보다 나이가 많다. 거제도에서 태어나 17세에 부산으로 가 양복 기술을 배우기 시작했고, 22세에 최연소 재단사가 되었으며, 29세에 자신의 매장을 오픈했다. 이렇게 최고의 전문가로 성장해가며 좋은 평가도 들었지만, 기성복이 시장을 장악해가는 시대 흐름 속에서 결국 문을 닫게 되었다.

이후 건설업, 주차 요원 등을 해 생계를 이어가며 두 아들을 키웠다고 한다. 이런 실패의 경험은 그에게 시대 흐름을 잘 살펴야 한다는 사업적 교훈을 줬다고 한다. 역경을 이겨내고 다시 테일러 일로 돌아오게 되었고, 몇 년 전부터는 부산에 있는 남성 패션 숍의 마스터 테일러를 맡고 있기도 하다.

무엇보다 유명해진 건 역시 SNS를 통해서다. 인스타그램에서는 5만 명이 넘는 팔로어가 있고 여전히 활발히 활동하고 있다. 또 유튜브 채널도 있는데, 특이하게도 먹방(음식 먹는 방송)이다. 백발의 노인이 옷을 멋지게 차려입고 먹는다는 게 조금 다르다. 이런 면은 다양한 시도를 하고 있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여용기 씨 역시 패션 분야를 오랫동안 공부해왔고 테일러다운 특출 난 감각이 있지만, 시작은 자기 자신의 분석이다. 후줄근하게 보이지 않는 살짝 피트한 스타일링을 선호하기 때문인지 코디할 때 체형에 주안점을 둔다고 하는데, 하루에 2시간은 가벼운 등산을 하고 30분은 근력 운동을 하고 있다고 한다.
60대에 늦깎이 모델로 데뷔해 패션으로
소통하는 김칠두 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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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5년생 신인 모델로 화제를 모은 김칠두 씨는 강렬한 인상과 뛰어난 패션 소화력으로
젊은 층의 지지를 받고 있는 60대 모델이다.
최근 인기를 끌고 있는 모델 중 김칠두 씨도 있다. 덥수룩한 수염에 긴 백발을 휘날리며 패션쇼 캣워크에 서기도 하고 광고 모델로 등장하기도 한다. 1955년생인데 가장 특이한 건 ‘신입’ 모델이라는 점이다.

원래 패션도 좋아하고 눈에 띄는 것도 좋아해 국제복장학원에서 의류 디자인을 배운 적도 있다고 하는데, 생계를 위해 꿈을 포기했다. 이후 안 해본 장사가 없다고 말 할 만큼 여러 가지 일을 했는데 마지막엔 순댓국집으로 정착을 했다. 한때 가게가 꽤 커지기도 했지만 프랜차이즈에 밀려 결국 27년간의 사업을 접고 말았다. 그렇게 노후를 걱정해야 할 타이밍에 딸의 격려 속에서 예전의 꿈을 실현하기 위해 용기를 내 나서게 되었다.

2018년 초 모델 아카데미에서 시니어 모델 과정을 등록하고 수업을 듣기 시작했는데, 기존과 다른 특별한 모델을 찾고 있던 패션업계의 니즈와 딱 맞아떨어지며 학원 등록 한 달 만인 3월에 서울 패션위크를 통해 모델 데뷔를 하게 되었다. 이후 다양한 방면으로 활동하는 중이고, 역시 7만이 넘는 팔로어를 거느린 인스타그램을 통해서도 소통을 이어가고 있다.

마치 영화 속 주인공 같은 큰 변화를 겪었지만 어쨌든 60세가 넘어 모델 학원을 등록하는 모험을 시작하지 않았다면 지금의 김칠두는 태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운이 좋았다고 할 수도 있지만 모델 수강 1개월 만에 서울 패션위크처럼 요란하고 거대한 행사에서 데뷔했는데, 떨리기는커녕 환희를 느꼈다는 것도 그런 관심과 열정의 결과가 아닐까.

모두가 이런 식으로 성공할 수는 없겠지만 자신이 열정을 가진 분야에 결국 도전하고 새로운 인생을 만들어가는 모습은 비슷한 동년배뿐만 아니라 젊은 사람들에게도 도전 의식과 영감을 준다.
글. 박세진 패션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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