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GAZINE / LIFESTYLE
2021. 01. 11
유연한 채식주의자
플렉시테리언
Flexible Vegeteri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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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식을 기본으로 하면서 경우에 따라 육류나 해산물도 먹는 유연한 채식주의자,
즉 플렉시테리언이 대세다. 다이어트 음식이나 사이드 메뉴에 불과하던 채소와 과일이
오히려 더 ‘대접받는’ 식품으로 바뀌어가는 현상에 대해 이야기해본다.
잘 먹고
잘 산다는 것의 의미
우리는 오랜 세월 동안 음식은 넉넉하게 먹고 남도록 준비해야 하고, 고깃국은 기본에 고기 음식 한두 가지는 식탁에 올라와 먹을 만한 밥상으로 여겼다. 그러나 먹고살 만해진 지금, ‘잘 산다’는 것은 정신적·육체적으로도 건강하며 행복하고 만족스러운 삶을 추구하는 라이프스타일이나 문화를 뜻하게 되었다. 소속감이나 성취감, 여가 생활, 가족 간의 유대, 심리적 안정 등 다양한 요소가 ‘잘 사는’ 것의 척도가 된다.
육류 섭취량을 좀 줄여보거나 육류 대신 생선이나 유기농 농산물을 선택하고, 패스트푸드보다는 슬로푸드를 즐겨 먹고, 가능하면 채소류는 직접 키워 먹는 사람도 늘어나고 있다. 나와 가족의 건강은 물론, 생명 존중과 환경을 위해 작은 기여를 할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실천하려는 움직임이 일고 있는 것이다. 채식을 기본으로 하면서 경우에 따라 육류나 해산물도 먹는 유연한 채식주의자, 즉 플렉시테리언flexitarian도 그런 선택의 하나다. 불과 몇십 년 전만 해도 한국인의 식탁은 말 그대로 채소, 곡물 일색이었다. 그때는 ‘3명 중 1명은 암 환자’라는 지금과 달리 중증 질병이 많지 않았다. 사람들은 병을 고치려면 먹는 것을 바꿔야 한다는 것을 본능적으로 안다. 그래서 건강을 생각하는 사람들이 고기 대신 채소를 선택하고, 유기농과 비유전자변형Non-GMO 재료, 식품첨가물을 꼼꼼히 살펴본다. 성인병 때문에 식탁을 바꾼 사람들은 직접 채소를 기르고, 손수 장을 담그고, 채식 밥상을 차린다.
외국에 유학이나 어학연수, 여행을 다녀온 이들은 현지에서 보고 듣고 경험한 베지테리언식을 선택하고 실천하는 데 망설임이 없다. 채식 위주의 식생활이 본인의 건강을 위한 것은 물론, 동물을 사랑하고 환경을 보호하는 생활 실천 문화라는 걸 알기 때문이다. 그들은 풀 먹인 소에서 짠 우유와 동물 복지 농장에서 나온 달걀을 고른다. 좀 더 나아가 농민에게 수익이 제대로 돌아가는지를 살피며, 공정한 과정으로 생산한 것인지를 상품의 선택 기준으로 삼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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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강이나 신념을 위해 육류 소비를 줄이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전면적인 채식이 아닌 약간의 식단 변화로도 지구에도 움을 줄 수 있다는 점이 플렉시테리언의 매력으로 작용한다.
식감살린
대체육의 진화
전 세계 인구가 지금 먹고 있는 육류의 3분의 1만 줄이면 식량 부족과 기아 문제도 완벽하게 해결된다고 할 정도로 많은 곡물이 공장에서 키우는 가축에게 공급된다. 가축을 대량 사육하기 위해 사료 원료인 옥수수와 밀 등을 대량 재배하고, 그를 위해 삼림 지역을 마구 개간해 농지로 바꾸면서 지구는 산소를 만들어내는 허파를 잃어가고 있다. 지구온난화의 주요 원인에는 가축들이 내뿜는 방귀와 분뇨 가스도 많은 부분을 차지한다. 경유 차나 공장에서 배출되는 질소산화물과 황산화물이 축산 분뇨에서 많이 나오는 암모니아와 결합해 미세먼지가 되기 때문이다.
2020년 현재 비건 11년 차인 필자는 2014년 여름에 대체 육류비건 고기와 관련해 잊지 못할 경험을 했다. 당시 네덜란드의 ‘베지테리언 부처’라는 육류 대체 브랜드에서 만든 햄버거 패티, 비프 슬라이스, 튜나 스프레드 등을 시식할 기회가 있었다. 직업상의 이유로 많은 종류의 육류 대체 식품을 먹어온 터였다. 그런데 그날 먹어본 튜나 스프레드가 내게 잊지 못할 기억을 만들어 줬다. 비건 튜나 스프레드를 크래커에 발라 입에 넣고 씹어보니, 과거 육식주의자 시절에 먹은 참치 통조림하고 맛이 똑같았던 것이다. 어느새 식품 가공 기술이 이렇게 발달했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몇 년 전, 그 튜나 스프레드의 기억과 견줄 만한 경험을 비욘드 미트로 다시 했다. 굽는 냄새는 완전 소고기였고, 식감과 육즙은 물론 살짝 감도는 소고기 특유의 누린내까지 비슷했다. 내게는 ‘충분한’ 고기였을 뿐 아니라 실제로 맛도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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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욘드 미트를 비롯한 대체육 기술이 발전하면서, 이제 진짜 육류의 맛과 질감을 거의 완벽하게 재현한 대체육이 시장에 등장하고 있다.
실험실에서 생산하는
'세포 키워 만든 고기'
이제는 실험실에서 진짜 동물성 고기를 만들어낸다고 한다. 세포배양육cell cultured meat, 일명 ‘실험실 고기’다. 동물 보호와 환경 보전 때문에 채식을 선택한 사람 입장에서는 비욘드 미트 같은 식물성 고기보다는 호감이 훨씬 덜하지만 보편성, 효율성, 환경, 동물 복지 등 여러 측면에서 좋은 영향력을 미칠 것으로 기대한다. 세포배양육은 사용 자원 측면에서만 봐도 일반 축산에 비해 토지는 1%, 물은 10%만 사용하면 된다고 하니 현재 소비되는 육류의 일부만 대체한다고 해도 그 기대 효과는 가히 혁명적이다.
2016년 미국 대체육 기업인 멤피스 미츠Memphis Meats는 소고기 세포배양육 가격을 파운드당 약 9,000달러까지 낮췄고, 알레프 팜스Aleph Farms의 세포배양육 스테이크는 1조각에 약 50달러로 생산 비용이 현저하게 낮아졌다. 대체육 신기술 분야에 대한 투자자의 관심도 뜨거워서, 멤피스 미츠는 전통 육류 생산업체인 타이슨 푸드Tyson Foods의 투자를 받아냈으며, 빌 게이츠를 포함한 투자자들도 멤피스 미츠에 투자했다고 한다. 이 회사는 2021년에 닭고기, 오리고기를 론칭할 계획으로 세포배양육 개발에 들어갔다고 한다.
미국 실리콘밸리에서 가장 잘나가는 식품 스타트업 저스트Just는 건강한 닭의 깃털에서 추출한 세포에 다양한 식물 성분을 배합한 뒤 산소 농도, 온도 등의 조건을 맞춰 근육 세포가 빨리 자라게 해서 진짜 닭고기를 만들어냈다. 저스트는 2018년부터 세계 최초로 녹두를 원료로 만든 달걀 대체 식품 ‘저스트 에그’를 판매해 대성공을 거둔 바 있다.
성큼 다가온 '배양육' 시대
전 세계 식품 시장의 도도한 흐름에 따라 돈이 몰리는 곳이 대체육 시장이다. 2018년 국제채식인연맹IVU은 전 세계 채식 인구를 1억8,000여 명으로 추산했으며 이 숫자는 지속적으로 증가하고 있다. 미국에서만 2014~2017년에 완벽한 채식인 비건 인구가 6배로 늘었고, 캐나다 밴쿠버는 비건 인구가 40%를 차지한다는 보도가 있다. 이제 채식은 소수의 특이한 문화가 아니라 돈 되는 산업이 돼가고 있다.
대체육은 처음에 채식인들이 소비하겠지만 점차 육식인들도 소비함으로써 시장이 확장될 것이다. 같은 값이면, 맛이 같다면 동물을 괴롭히지 않고 건강에 해로운 성분은 빼고 이로운 성분이 들어간 고기를 선택할 것이다. 건강, 동물, 환경 측면에서 ‘착한’ 상품으로 등장한 배양육이지만 우려되는 면도 있다. 아직 배양육원료 세포에 대한 (품질, 의학, 식품) 기준이 없다는 것이 첫 번째 논쟁거리다.
두 번째는 실험실에서 탄생한 고기는 ‘진짜 소비자’들이 맛도 보기 전에 저항과 규제에 직면할 것이라는 우려다. 미국 축산업자연맹 등 육가공업계는 전통 방식으로 도축한 제품에만 ‘고기’라는 용어를 사용해야 한다는 법령 제정을 위한 로비를 이미 시작했다. 건강과 질병을 이유로 고기를 못 먹는 사람은 공장식 축산 고기보다 세포배양육을 선택할 가능성이 높다. 페스코나 세미 베지테리언, 플렉시테리언 등 성향이나 상황에 따라 채식을 선택하는 중간 그룹도 세포배양육을 먹을 것이다. 그러나 동물 보호나 환경 때문에 채식하는 사람이라면 그조차 선택하지 않을 확률이 높다. 비건은 동물로부터 유래한 어떤 것도 먹지도 바르지도 입지도 쓰지도 않는 라이프스타일을 고수하기때문이다.
필자는 비건이지만, 그렇다고 고기를 좋아하는 육식주의자들의 취향과 선택을 절대 폄하하지 않는다. 완벽한 채식주의자인 비건 1명보다 페스코육류만 안 먹고 생선, 우유,달걀은 먹는 단계 10명이, 상황에 따라 채식을 선택하는 플렉시테리언 20명이 더 존중받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인류가 직면한 환경오염, 동물 학대, 기아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축산 관련 산업의 규모와 유통·소비되는 육류의 양을 줄이는 게 중요하기 때문이다. 베지테리언 또는 플렉시테리언으로 사는 것은 나와 가족, 이웃이 덜 아프고 행복하게 살 수 있는 확률을 높이는 라이프스타일임에 틀림없다. 건강과 동물 보호, 생명 사랑, 환경보호까지 이끌어내며 개인적으로는 삶의 만족감을 높여주는 슬기로운 라이프스타일에 도전해보자. 여러분의 작지만 크고 좋은 일, 플렉시테리언을 응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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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이향재 비건 라이프스타일 매거진 <비건Vegan>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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