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GAZINE / LIFESTYLE
2019. 06
명화 속에 깃든
가족 사랑
가족을 그린 화가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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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가들은 개인의 삶에 절대적 영향을 미치는 가족을 작품에 어떻게 표현했을까?
가족이 주제인 미술 작품을 감상하면서 이에 대한 궁금증을 풀어본다.
빛의 색채로 완성한
부모님의 초상
영국 현대미술을 대표하는 데이비드 호크니는 부모님을 모델로 세운 걸작을 그린 작가로 유명하다. ‘작품 1’에 등장한 두 인물은 호크니의 부모님이고, 배경은 그의 작업실이다. 그림을 관찰하면 흥미로운 점을 발견하게 된다. 옷을 잘 차려입은 노부부는 똑같은 모양의 의자에 앉아 있지만 자세도, 방향도 각각 다르다. 아버지는 45도 방향으로 돌린 의자에 편안한 자세로 앉아 고개를 숙이고 열심히 미술책을 읽고 있다. 그런데 아버지의 구두 뒤축이 살짝 들렸다. 아마도 아버지의 키에 비해 의자가 너무 높은 것 같다. 어머니는 정면 방향으로 배치된 의자에 두 손과 두 발을 모은 반듯한 자세로 앉아 앞을 똑바로 바라보고 있다.

이 그림에는 등장하지 않지만 자신과 남편을 바라보며 초상화를 그리는 아들을 애정이 가득 담긴 눈으로 바라보는 것이다. 빛은 왼쪽 창문을 통해 실내로 쏟아져 들어온다. 어머니의 드레스, 화병, 아버지의 양복을 자세히 보라. 밝게 빛나는 부분이 있는데, 이것들이 광원의 위치를 알려준다. 바퀴 달린 초록색 탁자의 긴 그림자는 빛이 왼쪽에서 실내로 들어오고 있다는 사실을 보다 확실하게 보여준다. 관찰력이 뛰어난 사람이라면 어머니의 드레스는 탁자 위 튤립이 꽂힌 화병과 아버지의 양복은 거울의 틀과 같은 색조라는 것을 발견할 수 있다. 그리고 탁자 아래 선반에 세로로 꽂혀 있는 파란색 표지의 책 여섯 권과 가로로 놓인 18세기 프랑스 화가 장 바티스트 시메옹 샤르댕의 화집 한 권이 수직과 수평의 조화를 이루고 있다.

화려한 튤립은 화면에 생동감을 안겨주는 역할과 가족 간의 사랑을 상징하는 의미로 활용되었다. 부모와 자식 간의 사랑이 듬뿍 담긴 이 아름다운 그림은 2014년 영국인이 가장 좋아하는 그림 1위에 선정되었다. 미술 전문가들로부터 현존하는 가장 영향력 있는 미술가로 인정받은 호크니가 그린 부모님 초상화이기 때문이다. 호크니는 영국을 빛낸 국민 화가로, 그의 1972년 작 ‘예술가의 자화상, 두 사람이 있는 수영장’은 2018년 11월, 뉴욕 크리스티 경매에서 9031만여 달러(약 1019억원)에 낙찰되며 현존 작가 중 최고 작품가를 기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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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이비드 호크니, ‘나의 부모님’, 1977, 캔버스에 유채, 182.9 x182.9cm / David Hockney, ‘My Parents’, 1977, Oil on Canvas, 182.9ⅹ182.9cm
ⓒDavid Hockney, Collection Tate, U.K. ⓒTate, London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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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임스 애벗 맥닐 휘슬러, ‘회색과 검정색의 조화’, 제1번, 1834년
예술가의 탐구 정신을 담은
검은 옷의 어머니
19세기 미국의 화가 제임스 휘슬러도 어머니가 등장하는 명화를 남겼다. ‘작품 2’의 검정 드레스를 입고 의자에 앉아있는 옆모습의 노부인은 휘슬러의 어머니다. 휘슬러는 어머니의 외모나 심리 상태를 표현하려고 이 초상화를 그리지 않았다. 검은색과 회색을 어떤 방식으로 배치하면 그림이 아름답고 조화롭게 보일 것인지 실험하려고 검정 드레스를 입은 어머니를 초상화의 모델로 세웠다.

휘슬러는 인물을 똑같이 그리는 것보다 색의 효과를 탐구하는 것을 더 중요하게 생각했다. 검정은 어둠, 죽음, 공포, 불행, 절망 등을 상징하는 색이지만 권위와 부유함, 현대적인 아름다움을 나타내는 색으로도 사용되고 있다. 색채의 배열과 구성을 열정적으로 탐구한 휘슬러에게 검정은 색의 효과를 탐구하는 도구였다. 그 증거로 그림을 관찰하면 다양한 검은색과 회색을 발견하게 된다. 노부인의 검정 드레스와 두건, 벽지, 판화, 커튼에서 여러 종류의 검은색과 회색을 찾아볼 수 있는데 이는 우연이 아니다. 검은색과 회색의 효과를 치밀하게 계산해 연출한 결과다.

재미있게도 예술적 탐구에 몰두한 화가의 의도와는 다르게 관람객은 이 그림에서 자식에게 모든 것을 바친 헌신적인 어머니상을 발견한다. 이 초상화는 세상에서 가장 유명한 어머니 초상화로 많은 사랑을 받고 있다.
그 자체로 따뜻한 대가족의
일상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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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 라르손, ‘큰 나무 아래에서의 아침 식사’, 1895년
스웨덴의 국민 화가로 불리는 칼 라르손은 가족이 주제인 그림을 가장 많이 그린 예술가다. 정원의 커다란 나무 아래에서 라르손의 가족이 평화롭게 아침식사를 하고 있다. 그림에 라르손의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 화가는 지금 가족이 식사하는 장면을 열심히 그리고 있기 때문이다. 한눈에 행복한 가족임을 느낄 수 있다. 반려견도 함께 식탁 의자에 앉아 즐겁게 아침 식사를 하고 있다.

그림에 나오는 소박하지만 아름다운 집은 스웨덴 중부 달라르나Dalarna 지방의 순드보른에서 라르손이 실제로 살았던 집이다. 라르손은 평범한 목조 전원주택의 외관과 실내장식을 아내와 함께 직접 디자인하고 아름답게 고쳤다. 7명의 아이들이 아늑하고 편안한 공간에서 자유롭게 뛰어놀면서 자랄 수 있도록 말이다. 그런 다음 아름다운 집과 실내장식, 행복한 가족의 일상생활을 그림에 담아 <나의 가정>이라는 제목의 책을 펴냈다. 가족의 소중함을 느끼게 하는 이 그림책은 당시 얼마나 인기가 높았던지 제1차 세계대전에 참가한 군인들이 성경과 함께 간직했다는 일화가 전해진다. 지금도 세계 각국에서 많은 관광객이 ‘라르손 양식’이라고 부르는 스칸디나비아식 전통 목조주택, 가구, 실내장식을 보기 위해 라르손의 집을 방문하고 있다. 가족이 사랑의 공동체라는 것을 이보다 더 잘 드러낸 그림은 찾아보기 어려울 것이다.
가족과
함께하는 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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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중섭, ‘길 떠나는 가족 2’, 종이에 유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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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중섭, ‘가족 그림’, 종이에 잉크
한국의 국민 화가 이중섭도 가족을 주제로 한 여러 점의 그림을 그렸다. ‘작품 4’를 보면 한 가족이 소달구지를 타고 따뜻한 남쪽 나라로 이사를 간다. 아버지는 콧노래를 부르며 소를 몰고, 어머니와 큰아이는 소달구지에 탄 채 꽃을 뿌리고, 작은아이는 비둘기를 날리며 즐거워한다. 행복을 찾아 먼 길을 떠나는 가족이건만 소달구지에서 살림살이는 찾아볼 수 없다. 가난한 가족의 재산이라고는 오직 아름다운 꽃뿐이기 때문이다. 이중섭은 이 그림을 그릴 때의 심정을 일본에 있는 가족에게 보낸 편지에 이렇게 적었다.

“아버지는 어머니와 태성이, 태현이를 소달구지에 태우고 황소를 끌면서 따뜻한 남쪽 나라로 함께 가는 그림을 그렸다.”

이중섭의 가족 사랑은 ‘작품 5’에서도 전해진다. 이중섭이 팬티만 입은 채 화실에서 그림을 그리고 있다. 화폭에 담긴 네 사람은 그의 가족이다. 이중섭이 일본에 있는 가족에게 보낸 편지에 실린 그림은 그가 아내와 두 아들을 얼마나 그리워했는지 잘 보여주고 있다. 이중섭은 1952년 사랑하는 가족을 아내 마사코(한국식 이름은 이남덕)의 고향인 일본으로 떠나보냈다. 1950년 한국전쟁이 일어나 가족을 데리고 피란을 가던 때라 생활비를 벌 수 없었기 때문이다. 이중섭이 제주도 서귀포에서 1년 정도 피란살이를 할 때 그의 아내는 보리 이삭을 줍고 그는 바닷가에서 게를 잡았을 정도로 가난했다는 일화가 전해진다. 전쟁과 가난으로 고난의 세월을 보내던 이중섭은 1956년 41세로 서울적십자병원에서 홀로 눈을 감았다. 가족이 주제인 이중섭의 그림들은 사랑하는 가족을 만날 수 있다는 희망이 그의 예술혼을 불태운 강력한 동기였다는 사실을 알려주고 있다.
이명옥 현재 사비나미술관 관장이며, 국민대학교 미술학부 겸임교수다. 미술관을 운영하며 다양한 연령층을 위한 미술 서적을 집필하거나 칼럼을 기고하고 있다. 주요 저서로는 2006년 대한민국과학문화상 도서 부문을 수상한 <명화 속 흥미로운 과학 이야기>, <명화 경제 토크>, <그림 읽는 CEO> 등이 있다.
글. 이명옥 사비나미술관 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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