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GAZINE / LIFESTYLE
2019. 06
환장할
우리 가족
‘우리’라는 집단으로서의 가족이 아닌 ‘나’와 ‘너’의 새로운 가족관을 말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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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은 개인을 그가 속한 집단과 동일시하는 경향이 있다.
전근대의 ‘집단’에 지나지 않는 그런 가족이 해체돼야 지금 시대에 맞는 새로운 가족을 형성할 수 있다.
개인이 연대한 공동체로서 가족을 새롭게 만들기 위해 사회적으로 필요한 일과 방향은 무엇일까.
가족에게 힘이 되려면
‘너’와 ‘나’로 분리하는 것부터
결혼하고 만 2년이 되지 않았을 때 남편이 말기 암 선고를 받았다. 처음엔 잘 와닿지 않았다. 그러나 그 무게는 천천히 조금씩 나를 짓눌렀고, 투병하는 남편 곁에서 나는 평소 잘 인지하지 못한 가족과 자신에 대한 생각이 무게를 더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특히 남편의 암 투병으로 가장 두려웠던 건 주위의 시선이 우리를 ‘비정상’ 가족으로 낙인찍지 않을까 하는 불안이었다.
남편의 투병을 도운 5년은 ‘우리’ 가족이란 울타리에서 벗어나 ‘나’라는 개인으로 다시 태어나는 시간이었다. 복지처럼 사회제도적인 부분은 나 혼자 힘으로 어떻게 할 수 없지만, 가족과 나 자신을 동일시하는 가족관은 내가 바꿀 수 있는 부분이었기 때문이다. 가족으로 인해 생긴 불안과 두려움, 걱정와 염려를 스스로 다루는 건 가족과 동일시하는 생각에서 벗어나는 분리 작업이라고도 할 수 있다.
물에 빠진 사람을 구하고 싶으면 물 밖으로 나와야 한다. 거리를 둬야 한다는 의미다. 구조할 때는 안전 요원조차 튜브를 가지고 들어간다. 하물며 사랑하는 사람이 물에 빠졌다고 다짜고짜 물에 뛰어들면, 구하기는커녕 둘 다 빠져 죽을 가능성이 크다. 설사 물속에 같이 있었다고 해도 먼저 물 밖으로 나와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먼저 그와 분리되어야 한다.
아이, 부모의 ‘소유’가 아닌
또 다른 삶의 주체로 인정하기
한국을 가족주의 국가라고도 한다. 집단으로서의 가족을 개인 가족 구성원보다 중요시하고 가족의 행복을 최상의 목표로 여기고 있다. ‘가화만사성家和萬事成’이 많은 가정의 가훈인 이유이기도 하다. 특히 부부보다 부모와 자식의 관계를 중요시하며, 개인보다 집안을 우선하는 가부장적 가족으로 인식된다.
몇 해 전, 관찰 예능 프로그램 <엄마가 뭐길래>에 출연한 강주은(영화배우 최민수 아내)이 아들과 대화하는 모습이 화제였다. 캐나다 명문대에 다니는 큰아들이 갑자기 말했다. “여름방학 끝나도 다시 학교로 안 가.” 휴학을 했다는 것이다. 눈이 휘둥그레진 엄마는 놀란 마음을 감추고 침착하게 물었다. “언제부터 생각한 일이야? 혹시 이미 결정이 끝난 일을 알려주는 건 아니니?” 목소리는 차분했지만, 엄마는 아들의 결정에 선뜻 동의하지 못하고 머뭇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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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마음을 털어놓는 인터뷰에서 왜 머뭇거렸는지 묻자 그녀가 대답했다. “저와 상의하지 않고 혼자 결정한 것에 놀랐어요.” 그녀가 놀란 건 아들이 학교에 다니지 않겠다고 해서가 아니라 그런 중요한 결정을 혼자, 엄마와 상의하지 않고 해서다. 그녀는 엄마에게도 생각할 시간이 필요하다며 아이를 방에 들여보냈다. 아이가 사라지자 그녀는 소파에 엎드려서 아이 의견에 동의할지 말지를 고민한 게 아니라, 중요한 일을 혼자 결정한 아들의 모습을 받아들이려고 한 것 같다. “품 안의 자식이라는 말이 있잖아요. 아이가 갑자기 (학업 문제를 어떻게 할지) 이미 결정했다고 했을 때 ‘내 품 안에서 나갔다’는 허전함… (아들이) 성인이 돼가는 과정이구나. 내 아기가 아니라 한 사회의 인격체가 되고 있구나. 이제 성인이 됐구나….”
그녀는 엄마가 동의하지 않으면 결정을 번복하겠느냐고 물었고, 아들이 당연하다고 대답하자 크게 안도했다. 아들에게 여전히 자기 존재 가치(필요성)를 인정받고 있다는 걸 확인했기 때문이다. 강주은•・최민수 부부는 이제 아이의 일을 결정하는 리더가 아니라, 아이에게 그저 조언해주는 응원자로 바뀌었다. 이처럼 담담하게 아들의 결정을 존중하고 자기 품을 떠나는 아들을 받아들일 수 있는 것은 자기 소유로 여기지 않고, 부모와 별개인 또 다른 삶의 주체로 보았기 때문은 아닐까.
자식을 부모의 소유로 보느냐 아니냐는 사회적으로 전근대와 근대를 구분하는 중요한 기준이다. 이것은 비단 한국인만의 특징은 아니다. 그러나 한국 부모들이 여전히 갈등 요인이 되는 아이의 반발이나 이의 제기를 무시하거나 억압하는 식으로 대응하는 게 사실이다. 혹시 아이가 야기하는 갈등이 부모에게는 가족이라는 공동체의 존엄을 훼손하려는 시도, 즉 가족 집단을 위협하는 것으로 생각하기 때문은 아닐까. 내가 낳아 키운 아이, 그래서 내 분신 같은 아이가 내 의도와 생각과 다르다는 의지를 적극적으로 드러내는 모습을 견고한 ‘우리’에 균열이 일어나는 신호로 받아들이는 것이 아닐까. 부모는 가족 안에서 일어나는 갈등이나 다툼에 죄책감을 갖거나, 부모 자격이 부족하다며 자기 비하도 한다. 반성을 넘어 강박적으로 자신을 책망하는 것이다.
혈육이라는 서로 같은 존재라는 생각을 바탕에 두고 가족 질서를 유지하려는 시도는 생물학적 차이뿐만 아니라 성격, 취향, 생각, 욕망 같은 개인적 차이마저 무시하게 만든다. 가족 집단과 다른 자신의 특징을 이해받지 못하고 부정당하면 그 구성원은 자존감과 만족감을 갖기 어렵다. ‘우리’ 가족을 화목하고 행복하게 지키려는 선한 의도가 오히려 갈등을 회피하거나 억압함으로써 환장할 가족을 만들 수 있다는 건 참 아이러니한 일이다.
정상 가족 판타지에서 벗어나
‘나’와 ‘너’의 가족을 위해
한국의 사회체제는 ‘개인’을 기본 단위로 하지만, 한국인의 의식 속 기본 단위는 ‘가족’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즉 개인을 그가 속한 집단과 동일시하는 경향이 있다. 더욱이 한국에서는 복지의 주체가 가족이다 보니 가족 구성원에게 문제(사고, 실직, 건강, 이혼, 장애, 폭력 등)가 발생하면 가족 전체가 위험해진다. 가족의 나머지 구성원이 그 부담을 떠안아야 한다.
이런 현실이 ‘우리’ 가족, 즉 ‘가족은 마지막 보루’라는 믿음과 개인을 가족 집단과 동일시하는 현상을 강화했다. 그리고 그런 믿음은 마지막 보루가 가족 구성원 개인을 위해 존재하는 게 아니라 도리어 개인이 마지막 보루를 위해 존재하는 것과 같은 본말이 전도되는 상황을 야기한다. 각박한 세상에서 따스한 위안을 얻을 곳은 가족뿐이라는 믿음이 강할수록, 가족을 배타적으로 성스러운 것으로 만들수록 ‘우리’ 가족 밖 세상은 점점 더 위험하고 고역스러운 곳이 된다. 무엇보다 사회 구성원이 가족을 배타적으로 특별하게 여길수록 가족 안에서 문제가 생기면 그 구성원 모두 절망 속으로 추락하는 것을 피할 수 없다. 화목한 가족이라는 환상이 클수록 그 가족은 서로에게 ‘환장할 가족’이 될 수밖에 없지 않을까.

가족의 해체를 말할 때 걱정스러운 시선을 가득 보낸다. 그러나 나는 가족의 해체가 반갑다. 그 가족은 전근대의 ‘집단’에 지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런 가족이 해체돼야 지금 시대에 맞는 새로운 가족을 형성할 수 있다. 새로운 가족은 가족을 지키기 위해 구성원 개인이 희생해야 하는 애처로운 가족이 아니라, 각자가 온전한 자기 자신이 되기 위해 함께하는 밝고 건설적인 가족이어야 하지 않을까. 그런 가족으로 거듭나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새로운 도덕도 만들어질 것이다.
가족에 대한 진짜 사랑은 절절한 ‘우리’로 똘똘 뭉치는 게 아니라, 각자 자기의 날개를 가진 온전한 ‘너’로서 자유롭게 날아다니도록 서로 지켜보고 응원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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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장할 우리 가족>, 홍주현 지음 , 문예출판사

한국 사회의 ‘가족’이 갖는 배타적이고 억압적인 모습에 답답함을 느낀 사람들을 위한 책이다. 국회 입법 및 정책 보좌관으로 일한 저자는 남편의 암 선고라는 경험을 통해 가족의 의미를 새롭게 돌아보고, 우리 사회의 편견에 맞서 정신적으로 자립한 포용적이고 개방적인 공동체로서 가족의 모습을 그리고 있다.
참고도서. <환장할 우리 가족>
(홍주현 지음, 문예출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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